#79 플라이낚시의 또다른 즐거움
모든 낚시가 마찬가지라 생각하지만,
특히 플라이 낚시에선 더욱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게 있다.
요즘 나는 "물을 읽기"를 화두로 이것 저것 공부를 하고 있는데,
미국의 모 작가가 쓴 "Reading the Water"란 책을 출퇴근 전철길에 한 두페이지씩 읽고 있다.
그리고 지난 계류 출조에서다.
그날은 그동안 읽은 이론을 적용시켜 보느라 낚시보다 물구경하는 일이 더 많았고,
고기를 살피는 일이 더 많았다.
여기쯤 한 마리가 있지 않을까? 저기도 한 마리가 숨어 있을 것 같은데....
그전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녀석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만만찮았다.
아직 여러가지 실력이 되지 못해 찾아낸 녀석들을 항상 낚지는 못하지만,
있으리라 짐작한 곳에서 발견한 한 녀석은 이미 낚은 걸로 쳐도 아쉽지 않다.
낚시도 놀이라면 아이들의 숨박꼭질 쯤으로 여기면 될까...?
그리고 그걸 넘는 또 하나의 즐거움,
찾아낸 녀석을 어떻게 유혹하여 나의 바늘에 걸어 볼까하는 과정이다.
그날 찾아낸 한 녀석을 삼아 보자
예전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포인트를 하나 찾았다. 아마 예전엔 성급히 들어서자
고긴 내가 보기도 전에 이미 달아나 버렸으리라 생각한다.
넓은 플랫 후에 20m 길이의 보가 하나 있는데,
중간쯤에 보가 끊겨 50cm 정도의 물빠지는 수로가 하나 있었다.
조심조심 다가가서 들여다 보니 25정도 되는 산천어 녀석 하나가
바닥에 바짝 붙어 꼬리를 약하게 흔들며
그 세찬 물길을 피하고 있었다.
좁은 수로의 바닥에는 오랜시간동안의 작용인지,
한 녀석이 들어 갈만큼의 크기로 깊은 구멍이 하나 있다.
대단한 욕심꾸러기인 듯하기도 하고, 대단히 현명한 녀석인 듯하기도 하다.
그 넓은 소에서 일어나는 게으른 해치와 님프들의 무작정 Migration은 전부 그 녀석꺼일테니까....
아마 그 사이즈를 넘는 녀석이라면 구멍에서 삐져나와서 세찬 물살을 버티기엔 힘들 것 같다.
어느정도 크면 다른 곳으로 옮기고, 다른 꼬마에게 물려주겠지....
물속에서 뭔가를 받아 먹는 듯해서 자세히 보려 얼굴을 들이대자
잽싸게 달아나서 상류의 플랫 한 구석에 숨어 있다가
한참만에 구석탱이로 돌아 돌아서 슬며서 돌아온다.
바늘을 던져볼까 했지만, 좀더 상류의 큰 소로 가보기로 하고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내내 그녀석을 어떻게 하면 싸움(?)을 걸어 볼까 궁리해봤다.
아마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우선 낚시의 방식은 몇번의 시도를 할 수 있는 드라이를 택해야 될 것 같다.
아마 님프를 쓴다면 티펫이 빠른 수로를 잠겨서 지나면서,
몸에 닿거나 해서 고기를 놀래킬테니 단 한번의 기회 밖에 없겠지?
우선 뒤로 조심조짐 천천히 뒤로 물러나서 왼손잡이인 내가 캐스팅이 편한 왼쪽으로 옮긴다.
그리고 훅을 골라본다.
아마 첫 훅은 좀 넉넉하고 큼직한 14번 이상의 캐디스를 쓸 것 같다.
빠른 수로에서도 몸을 날려 표면의 먹이를 먹을 정도로 욕심을 낼만한 크기라야겠지?
그리고 달려 있던 티펫을 끊어내고 수로의 빠른 유속을 대비해서 아주 긴 티펫을 바꿔단다.
보와 수로에 바짝 붙어 꿇어 앉아 몸을 숨기고,
수로 전방 2~3m 앞에서 짧은 커브 캐스팅으로 훅이 선행하게 프리젠테이션을 한 후,
유속에 의해 수로로 흘러 들어가게 내비둬 본다.
잔뜩 긴장하여 입질을 기다리다가 시각창을 지나간 듯 하면 잽싸게 라인을 걷어야 겠지.
물론 수로를 지나 훅이 물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전에 회수해야 되고,
또 철퍽이는 소리로 놀래키지 않아야 하니까 쉽진 않겠지....
두어번의 시도에서 입질이 없다면,
라인을 줄여서 리더만 남기고 나의 긴 대를 이용해서 대핑을 시도해야 될 것 같다.
먼저 짧은 데드 드리프트와 스케이팅을 해서 시각창 안을 집쩍여 보고,
그래도 안되면 훅을 메이훅으로 바꿔서 수면 위에 호핑시켜 봐야 될 것 같다.
산란을 흉내내 듯 톡. 톡. 톡...
그래도 안되면 훅을 캐디스퓨파나 납짝메이님프로 바꿔서 님핑을 시도한다.
역시 리더만 남겨서 캐스팅 없이 드리우는 방법으로 짧은 프리젠테이션을 반복해 보는 거다.
고기를 놀래키지 않게 20번에 가까은 작은 훅부터 시도해보고, 반응이 없으면
훅을 12번에 가깝게 늘려서 고기의 욕심을 시험해 봐야겠지...
리더가 닿지 않게 최대한 조심해야 겨우, 녀석을 그 자리에 계속 붙여 둘 수 있을 꺼다.
정말 그래도 안된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리더를 좀 길게 빼고
유속에 대비해 티펫에 봉돌을 두어개 물리고, 무겁게 한 14번 정도의 이노무스트리머를 달아서
수로 전방에서 천천히 물에 가라앉힌 후, 꼬마고기들의 상류 오르기 행동을 하면서
점점 수로 입구까지 접근 시킬꺼다.
톡. 톡. 스르르....
두번의 전진과 물흐름에 몸을 맡긴 자연스러운 후진....
마지막 후진으로 녀석과 가까워지면 갑자기 놀란 듯 빠른 연속 전진...
그걸 녀석에게 점점 더 붙여서 몇 번 반복한 후에도
반응이 없다면.....
장소를 옮긴다.
"그래 내가 졌다" 라고 말해준 다음...-_-;
이상은 긴 조행에서 단지 한번의 낚시일 뿐이다.
그뒤로도 무수한 다른 상황들이 이어진다.
혹자는 첫타에 입질이 없으면 바로 장소를 옮겨서 다음 고기를 노리는
경제적인 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먼저 녀석의 숨은 곳을 찾는 숨바꼭질을 한 후,
훅의 선택, 프리젠테이션의 방법 등의 작전을 짜고,
실행과 오류 수정, 실행과 오류 수정을 반복 그리고 반복....
그래서 낚은 한 녀석은
무심코 던진 훅에 올라오는 엉뚱한 대물보다 즐거울 것은 틀림없다.
이러한 과정들은 다른 낚시도 마찬가지 겠지만,
눈에 보이는 고기와 겨뤄보는 플라이 낚시에서 조금 더 한듯하다.
바로 플라이 낚시에서의 또 다른 즐거움은
물, 훅 패턴, 프리젠테이션, 어종, 채비, 기법 모두를 아우르는 천변만변하는
다양성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 다양성 때문에 낚시는 하면 할수록 단순해지는 게 아니고,
오히려 우리네 삶에 가까워 진다.
사실은 낚시의 장르나 종류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그러한 한 판의 낚시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일생의 드라마와 비길만 하다.
그 과정을 즐기는 낚시꾼의 인생도 그 만큼 깊을 테지....
게다가 그들은 그렇게 낚은 녀석들을 놔주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