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어릴 때의 낚시 추억....
부지런히 낚시를 하다 보면 가끔은 지금의 내 모습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때도 있는데,
그럴 땐 가끔씩 나 어릴 때 낚시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오늘은 어디 옛 추억이나 한번 더듬어 볼란다.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가장 어릴 때의 낚시하던 내 모습은
유치원 때인 것 같은데, 부산항 부둣가에 서서 아버님의 바지춤을 한 손으로 쥐고,
또 다른 한 손으론 난간에 걸쳐 놓은 낚시대를 쥐고 있던 모습이다.
고향집을 뒤져봐도 사진 한 장 남은 게 없지만,
내 머릿 속엔 마치 사진으로 박아 놓은 듯 뚜렷하게 남아 있다.
꾀제제한 얼굴에 누런 코 한줄기도 쭈~ 욱 흘리고, 어머님이 입혀주신 두툼한 솜옷을 입고,
그리고 배경은 커다란 상선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는 부둣가.....
어쩐지 색상은 흑백이다.
무엇을 낚았는지 미끼는 뭘 썼는지는 기억도 없지만
나의 지각 속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낚시 추억......
어릴 땐 고향이 바닷가인 터라 바다낚시를 많이 다녔던 것 같고,
외갓집이 경남 양산의 외진 산골이라 방학 때면 민물낚시를 다녔다.
나의 외갓집은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다소 오지였던 터라
도시에서 자란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우리 형제는 국민학교(우리또래에겐 초등학교가 낯설다...-_-;)부터 고등학교까지 방학 때면,
여름 겨울을 가리지 않고 아예 한두달씩 외갓집에 가서 살았다.
여름엔 새벽에 일어나 소를 몰아 뒷산에 두고, "구구구" 닭을 모아 모이를 주고,
암탉이 낳은 알을 줏어 만든 계란반찬에 맛있는 아침을 먹고는
하루 종일 노는 게 일이 었다.
산골 아래에는 큰 개천이 있어 여름엔 물놀이를 많이 했었다.
밤엔 모깃불을 피운 평상에 누워 별자리를 외며 잠이 들곤 했었다.
잠이 들지 않은 날은 서리도 갔군....^^
겨울엔 아침일찍 불을 때서 쇠죽을 끓이고, 사촌형님들과 산에 올라 나무도 하고,
빈 논에 서서 참깨대로 만든 화살로 하루종일 하늘을 향해 쏴대기도 했고,
산토끼를 모느라 눈밭을 뛰어다니고, 노루를 쫓아 가다 길을 잃기도 하고,
언 저수지에서 썰매를 타다가 추우면, 집으로 돌아와 화로에 남은 불씨에
밤과 고구마를 묻어두고 기다리다 잠든 밤들....
자연이 놀이터이고 그 놀이터에는 항상 숨은 생명체들이 나와 놀아 주었다.
그리고 낚시 역시 많이 했다.
외갓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하는 게 낚시대를 만드는 거였다.
외갓집의 뒷동산은 제법 큰 대밭이었다.
잘드는 낫 하나를 쥐고 올라 맘에 드는 길이와 바르기를 가진 대나무 하나를 고른다.
밑동을 몇 번 쳐서 쓰러뜨린 후 평지로 끌고 나온 후 잔가지를 친다.
초릿대가 될 대나무 끝은 조심조심 다듬는다.
살아 있는 푸른 대나무가 가진 유연함은 요즘의 왠만한 고급 낚시대와 비길만도 한다.
그리고 집에서 싸가지고 온 낚시줄과 봉돌, 바늘 등을 꺼내 채비를 맨다.
막대찌도 가져오기도 했지만 수수깡을 꺽어 쓰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집 뒤뜰과 외양간의 바닥을 파서 지렁이를 잡았다.
흰색 흙의 뒤뜰에는 흙색깔 모양의 굵은 녀석이 나왔고, 소똥이 널려있는
외양간에는 붉은 색의 작고 귀여운 꼬마지렁이가 나왔다.
겨울엔 항상 뒤뜰에서만 지렁이를 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곤 산아래 강이나 산골의 계단식 논 속에 숨어 있는 조그마한 저수지를 찾았다.
붕어와 피리들 그리고 가끔 나오는 메기....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 고기 낚는 데 대해 뭔가 생각을 가졌던 때가 기억난다.
국민학교 2~3학년 때인 것 같다.
그날은 사촌형님께서 우리 형제와 같이 동행했었다.
말이 형님이지 연배차이가 열 대여섯 정도 되는 분이시다.
역시 대나무 낚시대와 수수깡찌를 써서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는데,
어쩐지 나의 찌가 스물스물 올라 오더니 벌렁 누워버렸다.
제법 한참을 시루다가 올라온 건 내가 처음 낚았던 제일 큰 붕어였다.
26~7cm 정도라고 기억한다. 가져간 양동이 바닥이 좁아 꼬리를 접고 있었다.
꼭 집에 가져가서 아버님께 보여드려야지 하는 각오와 함께,
벌렁거리는 가슴을 쥐고 다시 낚시를 하고 있는데,
형님께서 양동이에 물이 모자란다고 물을 더 담다가 녀석이 철부덕 하더니 도망을 가벼렸다.
난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내 고기 물어내라고 형님께 떼를 부리고 뒹굴고....
형님은 다시 잡아 주마고 나를 겨우 달래고 묵묵히 자리에 앉으셨다.
한번 던진 대를 거의 들지 않고 말뚝 처럼 찌를 박아 놓으시고는
잠시 내린 소나기에도 피하지 않고 한참 동안을 그렇게 보내셨다.
그리고는 28cm 정도의 더 큰 붕어를 한 마리 낚으시고 나에게 건냈다.
"이거 니가 잡은 걸로 해라."
단순한 나는 다시 기뻐 날뛰었다.
그리고 그 붕어는 아직 부산 고향집 연못에 들어 있다.
집에서 그 붕어를 볼 때마다 형님의 낚시하시던 모습이 생각났고,
울고 불고 하던 내 모습이 마냥 부끄러웠다.
어린 마음에도 고기 욕심 내던 내 모습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뒤론 조금씩 나도 사촌형님의 흉내를 내 동생에게 내보고 싶어 했었다...^^
바다낚시의 추억은 대부분 가을이다.
동해남부권이 주요 낚시터 였고, 가을이면 휴일마다 아버님은 가족들을 싣고 바다로 향했다.
우린 변변한 놀이동산 다닌 기억은 없지만, 낚시추억으로도 만족하고 있다....^^
봄 여름에도 물가에 가면 낚시대를 챙기곤 했지만 가을시즌만큼 잦은 출조는 아니었다.
월요일이 시험이라고 해도 난 일요일날 낚시를 갔고,
부모님께서도 특별히 말리시진 않았던 고마운 기억도 난다....^^
온 식구들은 각자의 낚시대가 따로 한 대씩 있었고, 아버님께서는 나머지 네 식구의 낚시대를
하나하나 펴서 채비를 다 챙겨주신 후에야 비로소 당신의 낚시대를 펴실 수 있었다.
늘 식구들의 떨어진 바늘을 매고, 미끼를 챙겨주셔야 하는 통에,
큼직한 릴대를 꺼내 멀리 채비를 던져 두시곤 가끔 울리는 방울소리에만 낚시를 하셨다.
아마 그래서 내가 낚시 채비를 일찍 배운 것 같다.
내꺼라도 내가 매야 덜 죄송할 것 같았다. 동생도 역시 나만큼 빨리 배운 것 같다.
요즘 쓰고 있는 채비나 매듭도 거의 그 때 배운 걸 쓰고 있다.
아버님은 채비나 장비에 있어서 놀라운 손재주를 가지고 계셨고,
남들이 모르는 채비를 쓰셔서 좋은 조황을 얻기도 하고, 부셔진 릴의 라인가이드 등의 부품은
집에서 쉽게 만들어서 수리해 쓰시기도 하셨다.
그 영향으로 나도 채비 만들기나 바늘 매기를 좋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바다낚시엔 항상 어머님의 매운탕과 회 한접시가 뒤따랐다.
돌틈에 바람을 피해 버너를 피고, 솔밭 아래에서 모여앉아 먹는 점심은
가본 적도 없지만 고급식당의 비싼 음식보다 더 맛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혹, 고기가 남아 집에 싸들고 오면 이웃이나 친척을 불러 넉넉한 저녁을 해 먹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버님이 내게 일러두신 철칙은
'항상 나 닮은 꼬마 녀석들은 놔주라는 거였다.'
다음에 낚으면 된다는 말씀과 함께....
꼬마였던 나와 작은 고기들을 동일시 하는 마음이 그때부터 시작된 듯 하다.
그게 이젠 자라난 나와 큰 고기들을 동일시 해서 놔주는 건가? 후후....
어쨌던 그때 놔줬던 꼬마고기들은 이제는 낚을 순 없지만,
그들을 놔주면서 내 욕심도 조금씩 놔 주었던 것 같다.
어른으로 자라나면서 가질 많은 욕심들... 아버님께서는 미리 아셨나 보다.
아직까지 난 쥐고 있는 게 너무나 많지만,
나는 믿는다.
어릴 때의 나의 바탕이라면 가능성은 있겠지....?
어릴 때의 기억이 왜 소중한지 오늘 다시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