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바늘을 갈아끼는 이유는....
플라이 낚시를 하다 보면 바늘을 자주 갈아끼게 된다.
보통은 쓰던 바늘이 잘 듣지 않아 다른 패턴의 바늘로 바꾸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좀 다른 이유도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당분간 나의 낚시 지표로 삼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공부를 하겠다고 맘 먹은 후로,
가능하면 일단 한 종류의 바늘에 고기가 물어오면 확인만 하고 다른 바늘로 바꿔보고 있다.
던지면 덥석 덥섭 물어주는 멋진 바늘....
어종을 불문하고 듣는 전천후 바늘....
아직 꽝도 많은 초보지만, 나름대로 자신있는, 잘 물어주는 바늘 패턴이 몇 개 있긴 하다.
늘 그렇진 않지만 보통의 상황이라면 어떻게던 물어주는 훅들....
하지만 그걸로 만족할 순 없고, 난 늘 또다른 훅을 디자인해서 시험해본다.
다른 모양, 다른 색깔, 다른 기능....
그 때문에 나의 바늘 통은 언제나 조금씩 다른 훅들로 가득 차있고,
아직 써보지도 못한 많은 훅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잘 낚이는 바늘로 늘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고기만 낚아낸다면
그건 게임이라는 낚시의 한가지 특성을 내던져 버리는 일이다.
고기의 크기가 변하고, 손맛의 크기가 변한다는 한 가지를 제외하면
단순히 낚는다는 쾌락에 빠져버리는 일이다.
보증된 포인트에서의 증명된 패턴과 기법의 반복, 지루하지 않은가?
하긴 그렇게 해도 낚이지 않는 때가 가끔씩은 있으니 그리 지루하진 않겠군.
진정, 낚시를 게임이나 한 판의 놀이로 본다면,
한 종류의 바늘과 한 가지의 기법으로 한 마리의 고기를 낚아낸다면,
그건 이미 낚시꾼의 승리다.
다시 또 반복반복하여 승리를 재확인하는 것은 점령지의 포로를 유린하는 셈일까?
그건 겨우 한번 얻은 승리에 평생을 도취하려는 나약한 승자의 모습이다.
자신의 모습만 들여다 본다면 오히려 패자에 가깝다.
비록 다시 반복하더라도 그 내용을 조금씩 바꿔보면 어떨까?
훅의 종류를 바꾸고, 크기를 바꾸고, 색상도 바꾸고, 기법도 바꾸고....
솔직히 손맛의 유혹을 이기긴 쉽지 않다.
나 역시 늘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갈등 속에 방황하는 일도 많다....^^
머나먼 길을 떠나와 며칠 밤을 새서 준비한 한번의 낚시에서 손쉽게 고기를 낚는 것이
무슨 죄악도 아니고, 굶주린 손맛을 푸는 것은 인간의 입장에선
정신건강 상으로도 그리 나쁘진 않다.
그러나 낚시라는 것이 경험의 철학이 분명하다면
이겼던 data를 저장하고 또 다른 승부를 통해 경험을 늘려가는 것이
보다 그 넓이와 깊이를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엔 그 수많은 패턴을 모아서 결정화된 몇가지 다른 훅들로 재창조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다시 한 가지 훅에 집착하던 처음으로 돌아가나?
그러한 수많은 반복을 통해서 플라이 낚시라는 바퀴가 굴러가는 거겠지.
오늘도 어디선가 또 다른 플라이 낚시꾼이 바퀴를 굴리고 있겠구만.
그리고, 나 역시 오늘도 새로운 바늘을 그려본다.
그렇지! 이노무스트리머의 2001년 버젼을 준비해야 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