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서울 한복판의 고등어
오늘 점심 메뉴에 올랐던 갑작스런 고등어....
고등어란 녀석은 부산이 고향인 나에겐 아주 친밀감을 준다.
어릴 때부터 줄차게 밥상 위에 오르던 녀석....
뼈째 먹어대던 조림과 구이 그리고 국,
난 어릴 때만해도 고깃국이라면 고등어국인줄 알았다...^^
삶은 고등어의 살만 발라 추어탕처럼 끓여내는 어머님의 고등어국...
난 요즘도 부산엘 가면 가끔 아이처럼 어머님께 그 국을 조른다.
여지껏 먹은 고등어만 해도 수십 푸대는 될 것 같고 살로 간 것만 따져도 한쪽 다리 통 쯤은 되지 않을까?
고기 좋아하는 척 하던 녀석이 웬 엉뚱한 먹는 얘기냐구?
내 고향 친구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처음 인사말에 아침에 먹은 고등어구이가 맛있었단 글이 뜬다.
그 친구의 홈페이지 주제도 열대어 사랑, 고기 사랑임에도...^^;
난 그 친구의 드러낸 모순이 맘에 든다.
모순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아득한 사랑이 아닌,
"우묵빼미의 사랑"과 같은 손에 잡히는 이야기,
그래서 더욱 더 현실감을 더해 주기에....
나도 지금 그래 볼 생각이다....^^
다시 돌아와 지금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는 나에게
어쩐지 고등어의 인기는 좀 식어 버렸다.
다른 고기(육고기)를 많이 먹기도 하지만 서울 한복판의 고등어는 어쩐지 맛이 떨어지는 것 같다.
가끔 어물전에서 사온 고등어를 내 손으로 다듬어 보지만, 흐물흐물 해버린 살점들이 얄궂다.
새벽에 들어온 배에서 나온 고등어를 아침에 사서 구워 먹거나,
낚은 고등어를 그 자리에서 회쳐 먹는 것에 비교한다는 게 좀 무리이겠지만,
멋진 고등어살 한 점이 갖던 치아를 튕겨내는 뽀드득 거림은 마냥 그립다.
서울 아이들이 생선 싫어한다고 해도 난 이해가 간다....^^
아무리 교통이 발달한다고 해도 제자리가 아닌 것들은 본연의 색을 잃기 마련인가 보다.
물리적 거리만큼 뭔가 또 잃는 것이 있군.
그래도 평생 고등어가 없는 밥상은 왠지 섭섭하다.
요즘은 우리나라의 근해 수온이 꾸준히 올라, 높은 위도 지역까지 고등어가 올라온단다.
따라서 낚이는 수량도 많다.
내 고향 부산에도 추석을 전 후해서 한참 잘 되었고, 지금도 잘 낚이고 있단다.
물론 대부분의 낚시꾼들에겐 고등어란 반가운 존재는 못된다.
먼 원도까지 별러서 출조한 낚시꾼들에게 별안간 나타나 감성돔을 몰아내고
미끼와 밑밥을 해치우는 무지막지한 고등어 떼들이란 환장할 녀석들이 되니까.
하지만 나같이 가리지 않는 낚시꾼이야 뭐, 뭐든 반갑다...^^
어릴 땐 초겨울이 되면 아버님과 함께 고등어 낚시를 가곤 했다.
기름냄새를 좋아하는 고등어는 항구나 조선 혹은 선박수리창 같은 곳에 잘 모였었고,
튼튼한 원투대에다가 카드채비라고 하는 비닐붙은 가지 바늘을 달고
맨 아래 적당한 무게의 봉돌을 달아 원투를 한다.
하나 둘 셋.... 가라앉는 시간을 재며 던져둔 채비를 툭 툭 치며 릴을 감으면
"투두둑", "투두둑" 연이어 입질이 온다.
한 마리 건 것으로 만족하면 안되고, 계속 릴을 감아 주면 나중엔
덩쿨에 열매 열리듯 고등어 너댓마리가 주렁 주렁 달려 온다.
낚아 올린 녀석은 얼른 얼음 통에 담거나 배를 갈라 소금을 친다.
그리고 그건 저녁 반찬, 내일 아침 반찬 그리고 또 저녁 반찬....
멋진 낚시였다...^^;
이 카드채비라는 게 알고 보면 거의 플라이 채비다. 굳이 따지자면 웨트 드롭퍼 채비라구 할까?
플라이 바늘에 반짝이는 비닐에 구슬만 몇 끼면 충분히 고등어는 물어 줄 것이다.
그래서 채비도 만들어 두고, 벌써 두어번 부산엘 다녀왔지만
난 아직 제대로 고등어 플라이를 해보지 못했다.
이상하게 갈 때마다 고등어가 없는 해이거나,
숭어떼가 몰려와서 고등어로 착각하고 빈 낚시만 해대다가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올해는 고등어가 넘친다는 소식이었지만 어쩐지 가 보질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 플라이 낚시에 대해서 동경을 갖고 있겠지만,
그 역시 선입관 때문일 것 같다.
알고 보면 별 게 아닐 수 있다.
나 역시 제대로 낚아 올린 경우는 몇 번 없지만 기대는 놓지 않고 있다.
언젠가 기회만 있으면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렇게 낚은 바다 녀석들은 어쩐히 한 두 마리는 먹어 볼 것만 같다....^^;
다른 고기들도 마찬가지겠지. 단지, 입에 익은 고기냐 아니냐의 그 차이 일수도 있다.
산천어나 열목어가 붕어나 고등어처럼 널렸다면
나의 오늘 점심 찬은 그들이 될 수도 있겠지....?
지금의 난 고기 풀어주는 척, 잘난 척 하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난 물고기를 먹고 자랐고, 지금도 다름아니다.
아마 그건 물고기 뿐만 아닐 것이고....
난 여전히 엉터리 플라이 낚시꾼으로 찍혀 버릴 수도 있겠지만,
계속 내 낚시를 해볼 생각이다.
비린내가 적당히 풍기는
마치 서울 한복판의 고등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