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의 논 주변의 한적한 저수지나 강변에는 늘 그렇듯이 백로를 볼 수 있다.

주변 경치에 잘 어울리는 한편의 그림 같은 모습으로 움직임도 없이 서있다.

백로인지 왜가리인지? 둘 다 같은 것인지? 그냥 낚시꾼인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흰 몸에 기다란 부리를 가진 꽤 큰 새임엔 틀림없다.

내가 알기로는 그 친구도 고기를 잡아 먹고 사는 일견, 나와 비슷한 꾼자 돌림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그렇게 많은 백로를 보아도 다만 그림같이 서 있거나, 그림같이 날아 오를 뿐,

한번도 고기를 잡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는 건지... 사람들 앞에선 어부 노릇하는 걸 보여 주기 싫은 건지....

그러다 한날 갑자기 백로의 그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플라이 낚시라는 이상한 낚시를 하면서 한번도 고기 낚는 모습을 못 봤다는

어머님과 아버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낚시를 취미로 가진 많은 사람들이 낚시꾼이라는 명칭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원래 꾼이라는 의미가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뭔가에 빠져 있는 사람을 낮춰 부르는 듯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리라....

유사어종도 멋진 말만 있는 게 아니다. 장사꾼, 사기꾼, 도박꾼....

그래서 인지, 낚시라는 말을 기를 쓰고 감추고자 한다.

그렇게 자주 출조를 가면서 어부는 아닌 척하는 나도 마찬가지지만,

늘 손을 갗 잡은 물고기의 끈적이는 체액이나 붉은 피로 더럽히면서도 안 그런 척 고상한 척....

민물이나 바다의 전통낚시는 한문을 써서 조사(釣士)란 말로 선비의 개념을 빌려 왔으며,

근래에 새로 들어온 루어나 플라이 낚시는 앵글러(Angler)나 피셔(Fisher)라는 외래어로

자신의 격을 높혀 보이려 하고 있다.

낚시꾼이면 어떻고, 조사면 어떻고, 앵글러면 어떤가?

말 못하는 고기 입에 바늘을 건다는 점에서 보면 누구나 같은 족인 것을.....

차라리 먹기 위해 잡는다는 솔직성을 보여 주는 어부나 백로가 맑아 보인다.

하지만 낚시를 통해 심신수양의 계기로 삼거나 자연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표현하는

각각의 의미로써 호칭을 바꾸는 것은 풍류의 멋이 있어 반갑다.

지금은 비록 고기를 낚는 낚시꾼이지만,

나중엔 무엇을 잡고 무엇을 풀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