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가이드의 얼음을 떼면서....
매년 이 맘때면 낚시터에서 하게 되는 플라이 낚시 특유의 동작이 있는데,
바로 낚시대 가이드에 붙은 얼음을 떼는 일이다.
떼내도 붙고 떼내도 붙는 지겨운 얼음들....
마치 나의 고기 욕심처럼....
올해도 아직까지 몇 일 남아 있지만 어쩐 일인지 춥고 나서 낚시를 별로 가지 못했다.
플라이 낚시를 제대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웬지 가이드에서 얼음을 떼가며 낚시를 하지 않으면 한 해가 다 가지 않은 듯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지난 휴일, 여의도 샛강에 캐스팅 연습가서야 올해 처음 가이드에 얼음을 떼 볼 수 있었다.
오래된 플라이 꾼들이야 계곡 위주로 다니다 보니 겨울은 조한기라 접어 두지만,
새로 시작하는 꾼들은 저수지를 중심으로 다니다 보니, 겨울에 주로 플라이 낚시를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겨울 한 철의 잠깐 낚시로 치부되는 모습은 다소 아쉽기도 하다.
그리고 겨울의 플라이 낚시는 다른 낚시에 비해 낚시줄이 굵은 탓에 묻혀 오는 물이 많기 때문인지
영하의 날씨라면 여지 없이 가이드에 얼음이 끼기 시작한다.
바람의 유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영하 2~3도부터 제법 끼기 시작하고,
영하 5도가 아래에 바람까지 세차다면 낚시가 힘들 정도로 얼음이 달려든다.
주로 Tip 가이드 부분이 심해서 자작대를 만들 때면 큰 구멍의 탑 가이드를 만들어 달고 싶을 정도다.
아마도 이맘 때쯤이 되면 안그래도 차가운 물 속에서 버티느라 반은 가사상태일 것 같은
고기들 그만 괴롭히라는 동장군의 충고일테지만, 나 같은 욕심쟁이 낚시꾼은 아랑곳 없다.
어찌하면 가이드에 얼음이 끼지 않고 낚시를 즐겨볼까 온갖 고민에 빠져든다.
가이드마다 싱킹액을 발라 보고, 드라이액을 발라도 보고,
대가 부셔져라 로드를 물속에서 흔들어도 본다.
오른손에 두툼한 장갑을 끼고 서너번 캐스팅 마다 가이드의 얼음을 부셔본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또 고기를 겨눈다.
그러한 날의 낚시를 서너차례 다녀오면, 간혹 손은 동상에 걸리고,
빰도 간간히 얼어 얼룩덜룩 껍질이 일어 난다.
집에 돌아 와서 더운 물에 몸이라도 담글 량이면 뼈 속까지 아려온다.
추위에 반(反)할 뿐만 아니라 간혹 절벽을 타고, 계곡을 굴러 가며 낚시에 임하는 만용도 가끔 있다.
낚시를 다녀서 맘을 닦는 건지, 제 몸을 깍아 먹는 건지....
젊어서 몸을 막 놀리면 늙어서 고생한다던디....
우찌보면 사시사철 한결 같은 고기 사랑하는 낚시꾼일 것 같기도 하고,
고기 낚는 데 정신 팔려 제 명 짧아지는 줄 모르는 철부지 아이 같기도 하다.
고기 괴롭힌 만큼 제 명이 짧아지는 건 낚시꾼의 숙명이라 각오해보기도 하지만,
오래 사시는 고색창연한 낚시 선배들을 뵈오면 걱정할 수준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인생 길에 소주 한 잔을 더한다고
천명이 바뀌냐며, 잔을 비우는 간경화 말기 선배의 쓴 웃음이 생각도 난다.
" 낚시꾼으로 자처한 이상, 춥던 덥던 내 알 바 아니며,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라도 단지 나는 낚을 뿐이다. "
라고 얘기하기만은 쉽지 않다.
그 기상만은 가상하지만, 나의 바늘 끝에는 고기가 달려 있지 않은가?
낚다의 객체가 고기나 생명이 아닌 무형의 상(狀)이라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뭐던 과하면 넘친다고 했으니....
늘상, 난 정신 없이 낚고 잡는 낚시에 빠져 있지만,
가이드의 얼음을 뗄 무렵이면 가끔씩 나만큼 고기들도 지내기 힘들꺼란 단순한 생각이라도 해봐야 겠다.
차가운 얼음장 속에서 가녀리게 짓던 그들의 몸짓....
오히려 섬찟하게 느껴지던 어떤 계류에서의 기억이 떠 오른다.
참, 특이하게 3월의 햇볕 따뜻한 계류에서도 간혹 급변하는 산 속의 날씨 탓에 얼음이 끼는 경우도 봤다.
기온은 영상이었지만 찬바람 탓이라 생각이 든다.
좋은 날에도 낚시를 아껴 하라는 산 주인의 충고 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