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수족관의 고기
연말의 송년회 모임을 다니던 중이었다.
한 식당의 앞 마당에는 비단잉어가 노니는 연못이 있었고,
홀 안의 넉넉한 수족관에는 철부지 꼬마 잉어들이 나를 따라 다녔다.
내가 낚시꾼임을 알까? 후후....
백 여마리는 될 듯한 꼬마 잉어들은 제법 넓은 수족관 속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아래로 위로....
가만 보니 녀석들의 움직임은 3차원이다.
인간은 딛고 오를 언덕이 없으면 표면에서 꿈지럭대는 2차원 동물이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새마냥, 물이라는 질료를 공기삼아 자유롭게 Z좌표축을 무시하고 있었다.
고기라도 해도 수심의 제약이 있지만,
자력으로는 자기 몸의 한 배도 못 뛰어오르는 인간에 비할 바 아니다.
어찌보면 우리보다 물리차원적으로는 고등 동물일지도....-_-;
오히려 새는 추락이라는 위험 때문에 퍼덕이는 급작스런 모습이 많지만,
고기들은 구름 위의 신선마냥 유유자적 하다.
수족관이라는 틀 마저 잊고 지내는 듯 느긋해 보인다.
바닥도, 수풀도 없이 빈 유리수조에는 녀석들의 지느러미 하나 하나 움직임이 엿보인다.
인간의 의도에 따라 장식미가 과장된 하늘거리는 얇은 지느러미의 금붕어도 아닌,
단지 비단잉어들이었지만 나아가고, 물러나고, 회전하고, 오르고, 내리며 몸의 부분부분을
세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새삼 놀라움을 자아냈다.
움직임 하나하나 그 자체가 일종의 예술이란 느낌이 들었다.
마치 태극권의 고수가 보여 주는 극한의 투로 시범과 같은 느낌이었다.
고수일 수록 그 움직임에 가식이 없고 자연스럽 듯이,
단지 움직일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동안 고기 가둬두는 모습이라 좀 미덥잖게 생각했던
애어가들의 수족관의 취미도 다소 이해가 간다.
아마 고기들이 갖는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즐길 줄 아는 것도
낚시꾼의 한 가지 덕목이 아닐까?
그렇다고 굳이 집안에 어항을 들일 필요는 없다....^^;
지극히 아름다운 꽃은 비록 길가의 들꽃이라고 해도 꺽지 않듯이
고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낚시꾼이라면 낚시 중에도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자연히 고기를 아끼게 되겠지.
나중엔 바늘에 건 고기를 보는 것 보다 자유롭게 노는 모습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군.
그 때라면 낚시대를 접을래나?
그래도 난 아직까지 나의 바늘에 걸려,
그가 가진 생명력을 찰나의 시간에 모두 보여주는 그 몸부림 또한 아름답게 느껴진다.
낚는 순간 순간 마다 하나하나의 예술이리라.
그것에 어울리자면 낚시꾼도 아름다와져야 될텐데....
맘이야 다듬자면 어차피 시간이 걸릴테고,
후후.. 다음 낚시갈 땐 수염이라도 깍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