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생미끼 낚시와 가짜미끼 낚시
고기가 바늘을 무는 이유는 뭘까?
절대 낚시꾼이 이뻐서도 아니고, 심심해서도 아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바늘에 달려 있는 미끼를 무는 것 뿐이다.
간혹 미끼가 없는 빈바늘 혹은 거의 빈바늘도 물어주는 황당한 고기도 있지만
그래도 그 빈 바늘이 먹이감 혹은 공격할 대상으로 여겨져서 바늘에 걸리는 것일 테지.
가만 보면 모든 낚시가 갖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미끼를 쓴다는 점이다.
그 미끼가 살아 있는 미끼이건, 혹은 죽은 미끼이건,
먹을 수 있는 생미끼이건 먹을 수 없는 가짜미끼이건......
난 요즘 그중에서 가짜미끼 쪽의 낚시를 하고 있다.
루어, 플라이란 이름의 낚시들이 그러한데 낚시의 긴 역사에 비하면 최근의 일이다.
생미끼를 쓰는 오래된 낚시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낚시는 말도 안되는 낚시일 뿐만 아니라
가짜미끼를 진짜처럼 보이려고 자꾸 들었다 놨다 하는 통에
조용한 생미끼 낚시에 방해도 되는 것 같다.
반면에 가짜미끼를 쓰는 새로운 낚시꾼들이 보면
생미끼를 쓰는 사람들이 밑밥을 준답시고 물에다 뭔가를 던져 대고,
가뜩이나 예민한 가짜미끼 낚시인데, 진짜 미끼를 던져 오니 낚시가 안돼 환장할 노릇이다.
이런 사연으로 간혹 물가에서 소란이 일기도 한다.
누구도 땅이나 물의 주인이 아니지만 자리 다툼에, 포인트 다툼에
서로의 낚시를 망치기도 한다.
솔직히 나도 간혹 샛강의 낯선 낚시꾼에게 슬며시 라인을 밀어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_-;
(민다 : 라인을 상대편 쪽으로 멘딩해서 캐스팅해서 상대편의 낚시 영역 줄이기,
쉬운 말로 힘들여 배운 걸로 도적질하는 짓이다....-_-;)
엄밀하게 따지면 분명히 생미끼 낚시가 가짜미끼 낚시에 비해 고기는 잘 낚인다.
본연의 모습, 자연스러운 촉감, 그리고 생생한 향기....
제 아무리 잘 만든 가짜미끼라고 해도 절대 생미끼 보다 나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간혹 고기를 공격성을 유발하는 요소들을 축약해 놓은 어트랙트 계열의 가짜미끼는
일부 어종이나 특수한 상황에서 유리할 수도 있겠다.
그나마 가짜미끼 낚시가 hitting 율을 이만큼 올려 놓은 것은
가짜미끼가 갖는 열등성을 이겨내려 온갖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탓일 것 같다.
그래 봐야 생미끼 낚시꾼이 가짜미끼 낚시꾼의 기법마저 활용한다면
도저히 이겨낼 방법이 없지 않을까?
그러나 알고 보면 이것 모두 고기 한 두 마리 더 잡자고 하는 일이고.....
내가 가짜미끼 낚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자.
가짜미끼를 이용해서 고기를 속여 내는 맛이 통쾌하기도 하고,
보관이 용이하지 않은 생미끼보다 휴대가 간편하고, 수질 오염도 줄일 수 있고
미끼를 낄 때마다 손에 뭔가 묻히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전에도 말 했듯이 고기를 낚기 위해 또 다른 생명체를 바늘에 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풀어 줄 고기를 위해 또 다른 생명체를 희생시키는 일은 심한 모순이다.
먹는 다는 당위성이 있다면 오히려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간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고기나 미끼 모두 공평하게 낚시를 해야 겠다는 생각에서
가짜미끼를 좋아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가짜미끼라는 핸디캡을 통해 고기와 승부하는 편이 오히려 정정당당할 꺼란 생각도 있었다.
많은 고기를 낚아서 혼자 즐기기 보다는,
고기를 낚지 못해도 과정을 즐기며 재밌게(?) 낚시를 하자라는 생각으로
마음도 닦아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이것 모두 나 혼자만의 고집이다.
생미끼 낚시를 선호하는 내 동생의 얘기를 들어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난다.
가짜미끼 낚시는 고기에게 남는 것이 없는 냉정한 낚시다.
생미끼 낚시는 무슨 낚시이건 물 속 식구들에게 골고루 먹여 줄 밑밥이란 게 있고,
간혹 미끼를 떼 먹히는 낚시꾼의 아량이 있다.
고기 입장에서는 잘하면 육상별식(陸上別食)을 먹어 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민물낚시꾼이 많이 다니는 포인트에는 밑밥 때문에 항상 고기들이 몰려 있다는 얘기도 있는 만큼,
수질을 악화시킬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끔 오는 낚시꾼이 반가울 수도 있겠다.
먹지도 못할 것으로 분탕질이나 치는 깍쟁이 같은 가짜미끼 낚시꾼 보다는 반갑겠지.
그동안 고기 좋아하는 척 했지만 알고 보면
고기에겐 인정 잃고, 낚시는 힘들게 하는 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다리는 이 길을 걷고 있고,
남은 길이 많은 만큼 가볍게 또 바꾸고 싶진 않다.
그런 점만 빼면 뭐, 가짜미끼 낚시의 즐거운 점도 제법 많다.
대신 생미끼 낚시꾼들을 보면 가끔 감사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제 몫까지 고기 밥을 주시는 군요......^^'
아님 고기밥을 따로 싸 다닐까?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