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낚시꾼의 봄....


 

지난 설에 바다에 다녀온 후, 그럭저럭 낚시 안간지 2주가 넘은 것 같다.

보통, 한창 시즌의 2주라면 다음 낚시를 슬슬 계획해서 출발할 때이겠지.

시즌에는 낚시간지 3주가 지나면 늘 자동출조였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2월....

 

계류를 가자니 산속은 아직 얼음 속이고,

내가 좋아하는 한강을 가자니 친구들은 멀리~ 아니 깊이~ 있다.

저수지 송어낚시를 가자니 이미 겨울에도 몇 번 다녀온 터라 또 나서기 객적다.

3월의 햇살이 땅위의 모든 물들을 데우기 직전의

아직은 싸늘한 2월....

우찌보면 이 때가 낚시꾼들에겐 가장 조한기(釣閑期)가 아닐까 싶다.

플라이 낚시 뿐만아니라 다른 낚시도 마찬가지겠지.

붕어낚시라면 얼음을 타자니 이젠 이미 부실할테고, 그렇다고 뾰족하게 물낚시를 할 곳도 없다.

겨우내 다닌 하우스도 다시 가기 좀 그렇다.

바다낚시 역시, 때늦은 손님고기나 간혹 반겨줄 뿐, 뭔가 눈이 번쩍 뜨이는 낚시를 하기란 드문 일이다.

 

하지만 낚시꾼의 마음은 벌써 봄이다.

나만해도 낚시갈 곳은 없지만 맘만 두둥실 떠 있는 듯 하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얼른 따뜻한 봄날이 와서

친구들이 다시 놀아볼 생각에 조급증만 나고 있다.

어쩐 일인지 바늘 묶을 마음의 여유조차 생기지도 않고,

몇일 전, 애인과 헤어졌는지, 엊그제 자식을 군대 보냈는지 맘만 휑할 뿐이다.

아마 그런 이유로 낚시꾼들은 남보다 봄을 일찍 타는 게 아닐까?

정작 봄이 되면 남들처럼 느긋하게 나른할 틈조차 없다.

이미 낚시 다니기 바쁠테니....^^;

그런 면에선 역시 낚시꾼은 자연의 생체주기에 가까운 무리들인가?

 

사실 땅 위의 햇살은 일찍 봄을 가져다 주지만,

물속의 세상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물속까지 데우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는지,

3월을 제법 넘겨서야 수온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겨우 고기들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또 한 해의 낚시를 시작하게 되겠군.

봄은 아마 낚시꾼인 나보다 고기들이 더욱 기다리고 있겠지.

이번의 겨울은 길고 긴 추위에, 얼음은 더욱 두텁고, 눈마저 쌓여 답답하기 그지없는 한 때 였을테지.

졸리는 의식을 가다듬으며,

막혀버린 숨구멍과 조여오는 좁은 공간 아래 힘겹게 버텨내던 그들...

그리고 난 그렇게 살아남은 녀석들을 향해

신나게 낚시줄을 드리운다.

겨우내 뭉쳤던 욕망에, 여느 때보다 조금 난폭해지기도 하면서....

뭐 평소 때도 다 사연이 있겠지만,

햇살 따뜻한 봄날의 낚시에도 시린 한 구석이 남아 있었군.

아차!  지하철 역의 노숙자들에게도 햇살이....^^

인정 잃지 않으려면 더욱 조심 해야 될 때가

봄인가 보다.

 

아직 내가 걷는 이 길의 봄은 멀기만 하지만,

가로수의 가지 끝,  눈들은 이미 꼼지락 대고 있다.

물속의 친구들도 지금쯤,  가슴지느러미를 꼼지락 대고 있을 듯....

 

왠지 올해의 강준치들은 조금 일찍 마중 나올 듯한 느낌이 든다.

만일 그럴 일이 있다면 나의 길에도 햇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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